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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난 알고 있다.
‘신은 언제나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예외없이 마주치는 저 분은 매일 지치지도 않는다. 한달 조금 넘게 하셨으니까 충분하시겠지. 내일도 나오시면 신고 해야겠다.
저 아주머니의 종교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자신의 시간과 열의를 다 해 지하철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불만스러운 것도 아니다. 내가 진짜 불만인 것은 잘못된 말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신은 결코 날 위한 계획따위 만들어놓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그 ‘비~~익~~~ 픽춰'가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건 인간이 만든 환상인거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신은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주사위를 던진다.
말도 안된다고?
진짜라니까.
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순간에 날 대상으로 던져지는 주사위. 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소개팅
“소개팅할래?”
“남자 만나는 거 귀찮아. 싫어.”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그냥 해.”
“진짜 괜찮은 사람이면 네가 만나. 남친 필요하다고 노래 부르는 건 너잖아.”
“그 사람이 널 딱 집어서 소개해 달라더라.”
“응? 날 어떻게 알고?”
“지난번에 인스타에 올린 회식 사진 있잖아. 그 사진에서 봤대.”
내가 사진빨이 정말 좋다. 수천번의 테스트결과 내 얼굴이 정말 예쁘게 나오는 네개의 구도를 찾아냈고 어디서 카메라를 들이밀던 그 각도에서 내 얼굴이 나오게 하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이 정도의 보상은 있어야지.
“인스타에 올린 사진을 믿는 남자라면…… 바보거나 아저씨겠네. 외모만으로 평가하는 남자는 클럽에서 잔뜩 만나고 있으니까 더는 필요 없습니다.”
“너 소개해주고 나도 소개받기로 했단 말이야. 나 좀 도와주라. 응?”
곤란하다. 심히 곤란하다. 피하기 곤란해지고 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심하게 징징거리며 자기를 봐 달라고 안달을 낸다. 이렇게 심한 알람이면 분명 주사위 알람일텐데 왜 왜 이 타이밍에 알림이 들어왔지?
“점심시간 끝나간다.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응! 소개팅 하는 거다! 하는 거야~ 너만 믿을게.”
“그래. 그래. 알겠어. 이따가 이야기하자.”
이 생기발랄한 동료의 웃는 얼굴에 미소를 지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최대한 빨리 알림메시지를 확인하고 주사위에 어떤 결과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 ‘신의 주사위' 앱을 실행시켰다.
앱이 실행되면서 카메라로 넘어간다.
카메라를 책상 위에 비췄다.
동그란 원이 빙글빙글 돌면서 책상을 인식한다. AR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카메라로 비추는 사물을 인식해서 이것이 평평한 바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인식된 평평한 바닥에 하얀색의 판이 펼쳐진다.
판 위에는 아무런 글씨가 쓰여 있지 않다.
아무런 힌트가 없으면 상당히 피곤한데…. 하얀 판 위로 빨간빛 반투명한 주사위 세 개가 떨어져서 통통 튄다. 또로로록 튕기는 주사위는 금세 움직임을 멈췄다. 빠르게 핸드폰을 책상 가까이 붙여서 주사위의 눈금을 확인한다.
6, 5, 5
더하면 16.
핸드폰 화면에서 주사위와 하얀색 판이 빛이 부서지듯 사라진다. 어짜피 나온 결과인데 그냥 좀 두지 저걸 꼭 저렇게 사라지게 한다. 미션임파서블이나 가제트 시리즈 좋아하나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빨리 사라져서 몇이 나왔는지 확인하려면 항상 다급하게 움직여야 한다.
6, 5, 5. 더해서 16.
알림이 온 타이밍은 내가 소개팅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던 그 순간이었다.
일단 숫자를 노트에 적어두었었다. 그리고 바로 울리는 카톡
[소개팅 하는 거지? 9일?]
9일이라.
[이번 주에는 약속 있음. 다음 주 토요일 괜찮음?]
[16일이지? 잠깐 물어볼게]
안된다고 하면 그만두는 거지.
[16일 된데. 근데 16일에는 내가 시간이 안 되는데. 둘이서 만나도 괜찮아?]
[응. 번호 줘.]
[번호는 XXX-XXXX-XXXX. 저쪽에서 먼저 연락하겠데. 고마워. 너 복 받을 거야.]
[ㅋㅋㅋ 응]
복이라.
이 세상에 복이라는게 있으면 받는 게 나쁘진 않겠지만 그걸 꼭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네. 복이라는 것은 상당히 왜곡된 개념이다. 신이 원하는 주사위 눈금을 잘 따르면 그게 복이 되는 것이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복이 없는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강남역에서 삼성역으로 가야한다고 하자. 지하철, 택시, 버스중에 하나를 선택해도 되고 걸어서 가도 된다. 가는 길도 테헤란로를 따라서 걸어갈 수도 있고 그 뒤쪽 골목을 따라 갈 수도 있다.
여기에서 신의 주사위가 작용을 한다.
신은 저 수많은 방법과 길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지 주사위를 던져 결정한다.
신이 선택한 길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신께서 어지간히 고집이 있으셔서 만일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내가 가려고 하면 길을 막아버린다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게 해서 ‘내가 그 길로 가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몸소 보여주신다.
출근
오늘은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우울해서 어제 계획했던 포멀한 정장 바지는 치워버리고 블랙 블라우스에 노란색 치마를 선택했다. 계획에 없던 블라우스를 입게 되니 가방도 바꾸고 구두도 바꾸게 되어 1초의 여유도 없었던 내 아침 준비시간이 부족해졌다. 이런 날은 욕을 조금 먹더라도 지각하고 싶어진다.
정말정말 서둘러서 식빵 한 조각 먹을 시간을 겨우 냈는데 주사위 알림이 들어왔다. 하아. 신님. 왜 이렇게 바쁠 때 주사위를 던지시는 건가요. 오늘 아침이 그리도 중요한 순간이었나요?
회사에 전화해서 ‘저 반차요.’를 외치고 싶던 마음을 꾹 참는다.
오늘은 입안이 바짝 말랐는지 빵이 종이 씹는 느낌이라 한 입 베어 물은 빵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주사위를 확인했다. 주사위가 하나씩 던져진다. 바쁠 때는 꼭 이렇다니까.
처음 던져진 결과는 8. 그다음 눈금은 3. 더하면 11.
요즘 이 주사위 엄청 불친절하다. 한때는 바닥에 힌트가 될 만한 단서라도 좀 써줬는데 요즘 들어서는 새하얀 바닥에서 주사위만 떨그럭 구른다.
앉아서 잠깐이라도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너무나도 바쁘다. 서둘러 집을 나왔다.
8, 3, 8, 3. 아직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잊어버리면 안 되는 숫자이다. 8과 3. 8과 3. 입에서 계속 중얼중얼했다.
“지수 씨?”
출근 시간에 누굴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음악을 틀지 않더라도 이어폰을 꽂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곤 하는데 오늘은 급한 마음에 그것마저 잊어버렸다.
날 부른 쪽으로 돌아보니 단아한 단발머리에 통 넓은 니트와 반바지를 깔끔하게 매치시킨 옆 팀 박나리양께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안 끼우고 출근했던 게 다행이었네. 저분은 내가 대답을 안 하면 손목이라도 잡아채며 날 멈추게 할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나리씨.”
나름 회사생활을 열심히 해 온지라 지금의 기분을 정반대로 표현할 수 있는 미소와 환하고 반가운 목소리쯤은 자연스럽게 낼 수 있다.
“출근 시간이 좀 늦었네요? 지각 안 하겠어요?”
내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 하다는 건 네 출근 시간도 그러하다는 것일 텐데 남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하는 저 천진난만함은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또 한 번 강하게 들게 만든다.
“네. 그래도 지금 들어오는 지하철은 뛰지 않아도 탈 수 있겠어요.”
그 말을 하며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웬일로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항상 타던 뒤쪽으로 가려고 하니 나리씨가 성큼성큼 앞쪽으로 걸어가서 5-1자리에 선다.
5-1.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든다. 8, 3, 8, 3.
오늘의 숫자는 8과 3이다.
“나리씨. 우리 저 뒤쪽으로 가요.”
나리씨의 입 모양이 살짝 굳는 게 보인다. 아마도 나리씨는 항상 이 5-1 위치에서 지하철을 탔겠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여기서 타야 빈자리가 있는데’라는 말이 계속 들리는 듯했지만 나도 오늘은 강하다. 꼭 8-3칸에서 탈 거다.
일단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팔짱을 끼우고 8-3칸으로 끌었다.
살짝 저항이 느껴졌지만, 나의 강한 의지를 느꼈는지 순순히 따라왔다.
“사당 방향으로 가는 외선 순환 열차가...” 때마침 지하철이 들어온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윗층 승강장에서 비명같은 소리가 섞여들어온다. 지하철 안내방송, 바람소리. 그리고 비명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 지하철이 멈추기위해 브레이크 잡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니까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8-3 위치에 도착하니 지하철도 보폭을 맞추듯 서서히 정차한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난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질 만큼 당황해버렸다. 사람이 미친 듯이 많았다. 두 명이 탈 자리나 있을까 싶을 만큼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게다가 대부분 남자였다.
차마 나리씨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소리는 안 들리지만, 입 모양은 분명 욕을 하고 있을 거다. 순화해서 표현하면 ‘아침부터 뭐야. 재수 없게.’라는 내용이겠지.
문이 열리자 딱! 두 명이 탈 수 있는 공간이 겨우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8-2번이나 8-4번 쪽 문은 타 있는 사람도 퉁겨져 나올 만큼 사람이 많이 있었다. 오늘의 주사위는 이런 의미인가? 딱 두 명 자리가 있어요. 라는. 이게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나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겨우 둘이 자리를 잡고 문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오는 여자가 보였다.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내려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급한 발걸음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 여자를 따라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뛰어왔다.
저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당신이 탈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우리가 차지해버렸어요. 그렇게 급하게 내려와도 탈 자리도 없어요. 못 타요. 못 타. 천천히 와요.’라고외치고 싶을 만큼 빠르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제일 앞서서 계단을 내려온 여자는 우리가 있는 문 쪽으로 뛰어와서 타기 위해 달려들어 봤지만 한 명의 자리를 더 허락할 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정말 타고 싶다는 듯 이 여자가 나리씨 쪽으로 강하게 밀지고 들어왔지만, 나리씨는 앙칼지게 어깨를 흔들며 온몸으로 ‘더는 못 탄다고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포기해요.’라는 표현을 하며 여자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저기 저 위에 이상한 사람있는데....”
여자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부탁했지만 우리도 겨우 이 안에 껴 있는 것이지 자리를 더 만들 수 있는 여유따위는 없다.
여자는 우리가 있는 문으로 타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칸으로 타려고 시도했지만 이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던 사람도 타지 못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곳도 많이 있었다.
야속한 지하철은 한 명의 승객을 포용해주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다른 때라면 문이 두세 번 정도 살짝 열렸다가 닫히기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깔끔하게 문이 닫혀버렸다.
문이 닫힐 때 계단에서 또 다른 남자가 하나 계단을 두개씩 뛰어가며 빠르게 내려오는게 보였다. 그 남자는 눈에 띌만한 큰 주방용 칼을 들고 있었다. 저 칼을 왜 저렇게 들고 있는거지? 누굴 찌를 기세인데. 무섭게 왜 저렇게 들고 있는거야? 라는 생각을 했을 때 문이 닫힌 지하철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는 그 칼을 사람을 상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지하철 차장님은 저 상황을 전달받지 못했는지 서서히 지하철이 움직였다. 지하철 역사에는 그 남자가 휘두른 칼에 찔린 사람이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있는 그 칸에 타려고 했던 그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지수씨. 아까 지하철역에 무슨 일 났어요?”
못 본 모양이다.
나에게 화가 잔뜩 나서 아마도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지 못했나보다.
“아뇨. 그게…”
“다음 역은….”
빠르게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했다.
아까 내가 본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지하철은 역에 도착을 했고 뭐라 말을 해 줄 틈도 주지 않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지하철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뭐지?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모두 사라졌다. 서 있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의자에 빈자리가 잔뜩 있을 만큼 텅텅 비었다.
원래 이런 곳이냐고? 아니다. 적어도 우리 회사가 있는 역까지는 가야 조금 여유가 생기는 그런 칸인데 오늘은 그 많은 사람이 모두 내렸다.
내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나리씨는 후다닥 빈 자리 중에 제일 바깥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지수 씨. 와요. 여기 앉아요.”
아까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해주려고 했지만 내가 나리씨 옆자리에 앉자 재잘재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 저 역에서는 왜 저렇게 다들 잔뜩 내렸데. 애들 수학여행이라도 왔나? 아유, 오늘 아침에 지수 씨 만났을 때부터 뭔가 좋은 일이 생길까 싶었더니 이거였나 봐. 오늘은 회사에 정말 편하게 가겠어요.”
멈추지 않고 재잘재잘 떠드는 나리씨의 목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다른 출입구에 있다가 이 열차를 못 탔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 천진난만하신 분한테 소재꺼리를 하나 더 던져주느니 그냥 조용히 회사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야기해줘서 좋을 일도 아닌걸.
16일
‘소개팅’에 남자가 3 정도의 신경을 쓴다면 여자는 9 정도의 신경을 써야 한다. 애초에 소개팅이라는 건 피곤할 수밖에 없다. 얽힌 사람의 수가 많아진다. 나. 상대방. 그리고 중간에서 소개해 주는 사람 혹은 사람들.
나와 상대방 둘만 만나는 것이라면 내가 아무리 잘못하더라도 그건 상대방과 나 둘 사이의 일이지만 소개팅에서 그런 짓을 하면 사이에 껴 있는 사람이 곤란해져 버린다.
게다가 소개해주는 사람은 날 많이 봐왔으니까 ‘정’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양념을 쳐서 내 첫인상 너머에 있는 모습을 보고 소개해주는 것인데 소개팅이라는 건 애초에 [첫인상] 승부이다.
남자는 내 사진을 보고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 거였으니까 이 정도면 길에서 헌팅 당한 것 정도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역시나 첫인상의 승부인 건 다르지 않다. 적어도 처음 만났을 때 ‘사진과 같은 사람’은 되어야 하니까.
‘사진만큼’이라는 게 참 곤란하다. 남자들은 왜 사진을 찍은 그대로 올렸을 거로 생각하는 걸까. 요즘은 앱으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반짝반짝’하고 ‘뽀샤시”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도, 그리고 그 각도에서 보지 않으면 저 모습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도 모르는 듯 하다.
그 간격을 줄이려면 사진의 ‘뽀샤시’효과가 들어간 만큼의 화장을 해야 하고 아무래도 시선을 잔뜩 분산시켜놔야 하니 평소 잘 입지 않는 라인이 꽤 잘 드러나 보이는 드레이핑 원피스도 입어야 하고 옷에 맞춰 10센티 구두를 골라야 한다.
너무나도 여성 여성스러운 화장에 여성 여성스러운 스타일링은 이 자체로 [불편]이라는 딱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 것이다. 처음에 사진을 보고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왜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모든 게 다 짜증 난다. 그 남자도 짜증 나고 내 사진을 보여준 친구도 짜증 나고계단도 짜증 나고 차가 없는 내가 짜증 나고 날씨도 짜증 난다.
그리고 제일 짜증 나는 건 주말에도 저 지하철역에 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주에 살인사건이 났던 지하철역은 내려가기만 해도 으스스한 기분이 느껴진다.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있던 8번 위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온 뒤에 한참 걸어서 피해야 한다는 것도 힘들다.
어제 이 소개팅을 취소할까 말까 거의 다섯시간은 고민을 했지만 취소하지 않았던 것은 중저음의 그 남자 목소리가 좋았다는 것과 주사위에서 나온 16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투덜투덜하는 사이에 지하철은 금세 강남역에 도착했다.
3시 55분. 약속장소였던 카페가 강남 교보문고 근처에 있는 곳이라 강남역에서 걸어가려면 제시간에 도착하기는 글러 먹었다.
[죄송해요. 이제 강남역에 도착했어요.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답이 오기를 잠깐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지?
핸드폰 보는 것을 안 좋아하는 남자인가? 아니면 미리 도착해서 주문하는 중일까? 나보다 더 늦을 수도 있는 일이지.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갈 때까지도 이 남자는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퇴짜 맞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왔는데 약속장소에 안 나타난다면 진짜 죽여버릴 거다.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완벽한 세팅으로 나왔는데 이런 나를 퇴짜놓는다면 나도 내 분노의 크기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역에서 나와 큰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약속장소였던 커피숍으로 가까이 가고 있는데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이상하다.
강남역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적은 곳이라서 일부러 고른 곳인데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사람들이 서둘러 걸으며 하는 이야기도 신경 쓰였다.
“저기야. 저기.”
“누구 죽은 거 아냐? 생각보다 심해 보이는데.”
“몰라. 경찰이랑 119 오는 건 봤어.”
“저 정도인데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사고가 나긴 났나보다. 사이렌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고 모여있는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보니 아직도 내 문자를 확인 안 했다. 이 남자는 뭐 하는 거야.
약속장소였던 커피숍 근처에 다 왔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많은 사람이 그 커피숍을 빙 둘러서 서 있었다.
우리가 약속했던 커피숍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트럭이 내가 가려던 커피숍 유리를 부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트럭이 커피숍으로 돌진해서 저 가게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차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었고 소방수들이 차를 소화액으로 코딩해버리겠다는 듯 멈추지 않고 뿌려대고 있었다.
소화액이 뿌려지지 않은 바닥에는 핏자국이 어지럽게 뿌려져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크게 다친 듯하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뭐라고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나온다. 나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니 남자가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들것 아래로 피가 떨어지는 것으로 봐선 크게 다친 게 분명했다. 들것에 실려 나온 남자를 서둘러 구급차에 태웠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서둘러 달려갔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들것에 실려 나오기도 하고 부축을 받으며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천으로 얼굴까지 덮여서 나온 사람이 없는 것으로 봐선 죽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직 그 남자는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서너 번 걸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혹시 들것에 실려 나온 남자 중에 한 명이 그 사람이었을까? 사고 난 것을 보고 겁먹고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정신 하나 추스르는 것도 힘들었다.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으면 나도 저 안에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몸이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우왓! 괜찮으세요.”
거의 몸이 넘어가기 직전에 내 허리를 감싸 쥐는 손길이 느껴졌다.
“갑자기 힘이 없어져서…. 죄송합니다.”
날 부축한 팔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고 싶었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뇨. 전 괜찮습니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잠깐 도와드려도 될까요?”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손길을 뿌리치고 겨우겨우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숨을 여러 번 깊게 들이쉬고 나니 앞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초점이 잡히기 시작한 내 눈앞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가슴이 탄탄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오해하시지는 말고요. 정말 걱정이 돼서 그러는데 저기 구급차까지 부축해드릴 테니까 다른 분들과 함께 병원을 가시는 게 좋을 것으로 보여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볼께……. 아얏. ”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걸음을 떼려고 하는데 발목이 확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아.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 하는데 방심해버렸다.
제대로 발목이 겹질렸다.
발을 디딜 수도 없을 만큼 아팠다.
“괜찮으세요? 이번에는 진짜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그러게요. 지금은 진짜로 걷지도 못하겠네요.”
남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날 보더니 다시 내 허리를 감싸 쥐었다.
“저 옆에 제 차가 있으니까 제가 그러면 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요. 혹시 불안하시다면 친구분한테 전화하시면서 가도 돼요. 그건 괜찮을까요?”
남자가 손짓을 한 방향에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사고 때문에 차를 길가에 세우고 이쪽으로 보러 온 듯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실례하겠습니다.”
난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차로 향했다.
남자의 목덜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아티산의 향기가 내 아픈 발목에서 신경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병문안
“나 꼭 가야 하는 거야? 안 가면 진짜 안되나?”
“야아~ 가야지. 네가 안 가면 어떻게 해.”
상미는 내 팔을 잡아끌듯이 날 끌고 간다.
내게 억지로 소개팅을 하라고 강요했던 이 회사 동료는 오늘도 역시 약지로 날 끌고 병원으로 간다.
병원 주차장까지 와서도 난 차에 그냥 있을 테니까 혼자 다녀오라고 반항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날 강제로 차에서 끌어내서 질질 끌듯이 병원으로 들어갔다.
“너랑 소개팅하려다가 사고 난 거잖아. 병문안 한 번 가 주는 게 예의지. 전화 통화도 했던 사람이 다쳤는데 궁금하지도 않아?”
맞는 이야기를 팍팍 던져대니 피할 수도 없다.
나도 그게 맞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결한 단 말인가. 분명 뻔하게 ‘괜찮으세요?’ ‘힘내세요.’ 뭐 이런 이야기밖에는 할 말이 없는걸.
게다가 지금은 썸타는 남자도 생겨버렸다.
강남역 사고가 있던 날, 날 병원까지 데려다준 남자와 잘 되고 있는 중인데 이 남자를 병문안 가는 이 상황도 정말 웃기지 않나?
주호 씨는 날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병원에서 치료 끝나는 걸 기다려서 집 근처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날 이후 두 번 더 데이트했는데 이 남자 만나면 만날수록 매력이 넘쳤다.
게임회사에서 CTO를 하고 있고 게임이 꽤 성공해서인지 온몸에서 여유가 넘쳐 흘렀다. 왜 여자친구가 없었던 것인지 이상할 만큼 배려가 넘쳐 흘렀다. 주호 씨와 함께 하는 시간은 단 1분도 마음이 불편했던 적도 없었고 한순간도 재미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어두침침하고 접근하지 힘들 거라는 선입견을 품었던 것이 미안해질 만큼 괜찮은 남자였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병문안이 더 꺼려진다.
나로 인해서 사고가 난 것이긴 하지만 주호 씨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이런 병문안은 피하고 싶었다.
“여기야. 여기. 들어가자.”
상미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 옆에는 병간호하는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침대 위에 걸려있는 대여섯 개의 링거들을 보니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상태가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희 왔어요. 괜찮으세요.”
상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남자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사고가 난데다가 병원에 있었던지라 몸이 많이 아쉬웠음에도 눈빛은 반짝거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 오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많이 갈라져 있다.
“여기 이 친구가 소개팅하기로 했던 지수예요.”
갑작스러운 소개에 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그리고 예상했던 일상적인 안부 인사가 오갔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
“저기…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소개팅도 제대로 못 하고…...”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 것 같은 이런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저 때문에 사고가 난 것 같아서 더 죄송해요. 처음 약속했던 대로 그 전 주에 만났으면 괜찮았을 텐데. 제가 더 죄송해요.”
“…… 음…..그러게요……..”
응? 무슨 의미지? 저게 무슨 의미로 한 말이지? 내가 그 날로 약속날짜를 정한 이유를 알고 있는 건가?
“저기… 상미 씨. 상미 씨 맞죠. 저 지수 씨하고 둘이서 잠깐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되요.”
갑작스러운 부탁에 우리는 둘 다 당황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상미는 내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하지? 라며 바라보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야기요?”
“그냥 별건 아니에요.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명령형의 부탁에 상미는 내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러면 자리 피해드릴게요. 지수야. 이야기 다 끝나면 전화해. 매점에 가 있을게.”
아니! 너 그러면 어떻게 해. 이 상황에서 날 혼자 두면 어떻게 하냐고. 이 남자는 물론 아프니까 별일은 없겠지만 이런 상황 무섭다고. 혼자 도망가기냐.
라는 말을 속으로 마구 했지만, 상미는 야속하게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무서운 적막이 흘렀다.
“저… 저기…. 무슨 이야기를….”
“16. 알고 있었죠?”
남자의 목소리에서 아픈 기색이 모두 사라졌다. 정말 단호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이 사람이 아픈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의 목소리였다.
“네?”
무슨 이야기지? 16? 16. 당연히 알고 있지.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날짜였잖아.
“16일로 날짜를 바꾸자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었지만, 지금은 분명해졌어요. 당신도 주사위 알고 있죠.”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남자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신의 주사위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당신도 6,5,5가 나왔던 건가요?”
남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표정은 잔뜩 굳어서 날 바라보고 있었고 그 표정을 보면 대답을 안 할 수 없을 정도의 기세였다.
“… 네… 맞아요. 6,5,5”
“그 주사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요?”
“그게 거기에서 나온 숫자들을 신경써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 정도… 알고… 있어요.”
'후유….' 남자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주사위 이제 보시면 안되요. 우리는 그걸 감당할 수 없어요.”
“네? 왜 감당이 안되요? 그냥 숫자만 잘 지키면…”
“주사위가 던져지는 바닥 판을 자세히 본 적 있어요? 거기 처음에는 주사위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자세히 해 줬는데 요즘에는 아무 설명이 없는 판으로 바뀌셨죠? 그 판이 아직 빛나고 있을 때 그만 둬야 해요.”
내 바닥판은 눈이 부실만큼 빛이 난다.
“그 주사위…. 정말로 이제 보시면 안 돼요. 보면 안 돼요. 정말 큰일 나요.”
“네? 그게 무슨 이야기죠? 보지 말라니요.”
손에서 진동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알림이 왔다. 신의 주사위의 알림.
“보면 안 돼요. 그건 신의 주사위가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신의 주사위가 아니면 뭐죠?”
“그 주사위는…….”
이 남자는 힘이 더 필요하다는 듯 말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 주사위는 악마의 것이에요.”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난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쥐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숫자는 악마의 숫자예요.”
“난데없이 악마의 숫자라니요. 알림도 신의 주사위라고 뜨잖아요.”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아요.”
남자의 이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또냐. 신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저도 그 주사위를 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죠. 그동안 남을 도우며 살아왔던 것에 대한 보상으로 이런 선물을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남자는 잠시 말을 쉬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다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힘을 풀었다.
“행운이라는 것은 그 양이 정해져 있어요. 당신이 그 행운을 가져간 만큼 그것은 더 큰 불행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그걸 당신은 계속 적립해가고 있는 중인 거예요. 바닥 판이 빛을 잃고 붉게 물들면 모든 것이 끝나버려요.
당신이 쌓아놓은 불행이 돌아오기 전에 그만둬야 해요. 당신은 그 불행을 감당해낼 수 없어요. 지금 나처럼 말이죠.”
남자는 한참 말을 쏟아낸 것이 힘들었는지 내 쪽으로 향해있던 얼굴을 돌려 병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만나고 싶었어요. 이 경고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이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했기에 다행이라는 듯이 남자의 표정이 풀어졌다.
남자가 안심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쳤다.
난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 남자에게 귓속말하기 위해 얼굴을 뺨에 가깝게 다가갔다. 이 남자의 숨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상.관.없.어.요.”
난 차분하게 한마디씩 해 주었다.
"그 주사위가 내 행운을 몰아서 쓰는 것이든, 신의 결정을 훔쳐보는 것이든, 아무 상관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한번 말을 쉬어 주었다. 이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이 꽤나 재미있었다.
"그걸로 인해 생긴 불행이든, 저주든. 그걸 꼭 내가 가져갈 필요는 없거든요."
나지막히 그리고 조용히 그 남자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당신이 나 대신 사고를 당해준건 고마워요. 근데 어쩌죠? 나한테 나온 16은 해결됐는데 당신에게 나온 16은 아직 해결이 안된 것 같네. 몸 조심해요.”
난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남자는 차마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병원을 걸어 나가려는데 ‘또각또각’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병실 문을 천천히 닫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남자의 절규와 같은 비명이 병원을 가득 채웠다.
아까 도착했던 주사위 눈금을 확인하려면 어디로 가서 봐야 하냐. 상미가 있는 매점이 제일 괜찮을 듯하다.